[송필경 칼럼] 최악과 차악을 구별하자, 민주주의 승리를 향하여!

송필경 원장 | 기사입력 2021/11/09 [13:53]

[송필경 칼럼] 최악과 차악을 구별하자, 민주주의 승리를 향하여!

송필경 원장 | 입력 : 2021/11/09 [13:53]

남루한 농업국가 베트남은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산업국가 미국과 1964년에서 1973년까지 세계사에서 유래 없는 대규모 전쟁을 치르고 승리했다. 미국과 베트남의 국력 차이는 1천 배 훨씬 이상이었다.

 

이삼성 교수는 <20세기의 문명과 야만( 한길사. 1999)>에서 베트남의 승리를 이렇게 분석했다.

 

『… 베트남인들이 미국 군사력에 대항하여 혁명적 헌신성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에 학자들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되는 분석태도를 취한다.

 

1. 한 흐름은 베트남 사회에 대한 식민주의적 지배와 봉건적 질서라는 사회 역사적 모순, 미국 식민주의 억압성, 그리고 식민주의 세력이 비호한 베트남 내 매판적 지배집단의 반민중성을 강조한다. 이런 조건 속에서 자생한 혁명 지도자 집단과 민중 사이에 진정한 연대가 존재했음을 주목한다.

 

2. 다른 흐름은 호찌민을 비롯한 혁명지도자집단이 주도한 조직과 이데올로기적 조작에서 찾는다. 혁명 엘리트가 농민 대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동원해냈는가 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는 것이다.

 

1.의 경우는 혁명지도집단의 조직과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중동원의 능력 못지않게 민중 자신들의 자발적 참여와 헌신을 강조하는 것이며,

2.의 경우는 민중의 피동성과 혁명 엘리트 집단의 조직과 동원 능력을 부각시킨다.』

 

▲ 이미지 : 송필경 페이스북에서 갈무리    

 

내 생각이다. 베트남의 승리 원인은 제국주의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인민의 열망과 인민의 열망을 한 치도 낭비하지 않은 지도자의 역량이 완벽하게 일치했기 때문이다.

 

1945년 남한에 미군이 ‘점령’하자, 일제 부역세력이 반공에 빌붙어 권력을 잡았다.

 

미·소 이념의 냉전과 한국전쟁이라는 내란의 열전에서 이승만의 대량 학살과 독재를 경험했다. 이때 외신 기자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필 수 없다고 우리 정치를 비아냥거렸다. 민중의 집단 지성은 419로 이승만을 쫓아냈지만 우유부단한 장면 정권이 516의 박정희에게 붕괴당했다.

 

부마항쟁으로 박정희의 유신을 끝장냈지만, 전두환의 12.12를 막아내지 못했다.

 

전두환은 참혹한 광주 학살로 민주주의 숨통을 끊어내려 했지만, 위대한 610 항쟁으로 민주주의는 부활했다. 하지만 양김의 분열로 군부학살 집단을 응징하지 못한 채 3당 합당이란 기이한 체제로 넘어갔다.

 

노무현 정권은 소중한 서민정권이었지만 정권재창출하지 못한 채 이명박근혜라는 수구 집단에 정권을 넘겼다. 수구의 부패와 무능은 마침내 2017년 촛불 혁명을 통해 심판을 받았다.

 

1945년에서 2017년까지, 만 72년 만에 419혁명, 부마항쟁, 광주항쟁, 610항쟁을 거쳐 촛불혁명을 이루었다. 남한은 민주주의 발달이 늦었던 아시아에서는 최고 수준의 민주 역량을 과시하고 있고, 유럽의 민주주의 발달사에도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민주화 속도다.

 

남한은 베트남의 호찌민 같은 불세출의 지도자 없이, 민중의 집단 지성만으로 세계사 어디에도 손색이 없는 민주주의란 장미꽃을 들고 있다. 아마 파벌이 정당을 지배하는 일본은 이제 우리 민주주의 수준을 영원히 따라 잡지 못하리라.

 

촛불혁명 후 더불어민주당이 무능으로 민주세력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촛불에 열망을 실어 거대 여당을 만들어 주어도 민주주의에 헌신한 집단 지성들에게 고마운 줄을 손톱만큼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국짐과 다를 바 없어’ 하며 이번 대선에 냉소를 짓는 진보 지성인들을 보면, 안타깝기 정말 그지없다.

 

혁명의 나라 프랑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부수어 대혁명을 시작하고 230여 년이 지난 21세기 최근에도 노동자들이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저항하며 거리를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심지어 고등학생들도 대학 입시를 경쟁력을 강화하는 시험 제도로 바꾸려하자 파리의 거리에 뛰쳐나와 주차한 수많은 차를 불태웠다.

 

인류의 전 역사를 통해 인류가 최선을 선택한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최악은 피할 수 있다. 차악의 선택, 그것이 그나마 지혜였다. 최악과 차악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책임 있는 지성인이 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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